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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킬링 필드

by 허니남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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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링필드

 

 

롤랑 조페 감독이 연출한 1984년 작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는 베트남전으로 인한 원치 않은
희생국이 된 캄보디아의 1973년부터 1979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1. 캄보디아의 아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는 크메르루주가 자행한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이 집단으로 매장되어 있는 곳을 킬링필드(죽음의 들판)이라고 합니다. 1975년 4월 17일 집권한 폴 포트의 크메르루주 정권은 3년 8개월 10일 동안 학살, 기아 등으로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인 170만 명에서 250만 명 정도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하니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학교 학창시절, 반공영화라고 해서 전교생 모두가 당시 서울 대한극장에서 관람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유는 몰랐다. 왜 이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그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가끔씩 TV에서 이 영화를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갈 뿐, 집중해서 보지는 않았습니다. 잊고 살았다. 가끔 앙코르와트 사원이 보고 싶어 캄보디아 여행을 가고 싶었을 뿐 캄보디아 나라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영화 '킬링필드'는 아마도 저와 같이 캄보디아의 비극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은폐되고 감추워진 캄보디아 역사의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진실을 영화를 통해서 알리려고 하는 거 같습니다. 영화는 시드니와 프란의 관점으로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당시의 참상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2. 영화 킬링필드

이웃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은 중립국인 캄보디아까지 전쟁에 휩쓸리게 됩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캄보디아에서는 내란이 일어납니다. 정부군과 공산화를 원하는 크메르루주 군이 맞서게 됩니다. 정부군이 불리해지자 미군은 크메르루주 군을 섬멸하기 위해 폭격을 가하여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1973년 이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 타임스 특파원인 시드니는 폭격 장소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보도진을 따돌리려 하고, 시드니는 뉴욕 타임즈에서 채용한 캄보디아인 기자 디스 프란을 만나 어렵게 현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끔찍한 참상을 목격하고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전쟁이 정부군에게 불리해지면서 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위기를 느낀 프란과 시드니는 미국 대사관의 도움으로 가족을 탈출시키고 자신들은 취재를 위해 마지막까지 남기로 합니다.  그들은 크메르루주 군에 잡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프란의 간곡한 설득과 도움으로 시드니를 비롯한 다른 기자들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크메르루주 군이 정부군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자 캄보디아인들은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프랑스 대사관 측은 크메르루주 군의 압력으로 캄보디아 인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합니다. 프란 또한 포로 신세가 되고 맙니다. 시드니와 그 동료 기자들은 그를 구출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구출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시드니는 백방으로 프란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를 구출할 길음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시드니는 캄보디아 내란 취재 기자로 기자상을 받게 됩니다.

한편 프란은 크메르 루주 군의 포로가 되어 심한 부역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갑니다. 공산주의는 가진 자들이나 지식인들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식인들을 철저히 색출하여 처형한다는 사실을 안 프란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숨통을 조여 오는 위기감에 탈출을 시도하지만 다른 수용소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지식인 출신의 크메르루주 군의 장교인 파트의 배려로 프란은 파트의 어린 아들을 돌봐주는 일을 맡게 됩니다. 자신이 선택한 체제에 회의를 느낀 파트는 자신의 아들을 프란에게 부탁하고, 프란은 그의 아들을 안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탈출 도중 프란은 파트의 아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그는 킬링 필드를 지나 제3 국 태국의 난민촌에 도착하고 거기서 난민촌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1979년 10월 마침내 프란은 자신을 구하러 온 시드니와 극적으로 만나게 되고 인류평화를 갈구하는 존 레넌의 'Imagine'이 그들의 뜨거운 포옹과 함께 흘러나옵니다.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그들의 사랑과 우정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3. 기자의 소명의식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뛰어드는 종군기자들의 용기와 희생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들은 이념을 따지지 않고 죽어가는 현장을 카메로 담아 매체를 통해 끔찍한 파괴와 살육, 인간의 잔악성을 고발하기고 합니다. 

취재는 항상 위험을 동반하게 되지만 그들의 소명의식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접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언론의 눈은 정직할 때만 제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인의 왜곡된 시선과 잘못된 기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자란 그만큼 책임감이 요구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시드니가 특종기사로 큰 상을 받았을 때 다른 동료 기자들은 그에게 비난을 퍼붓습니다. 이 장면에서 공명심을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특종에만 집착하는 언론인들의 시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 이념의 차이

 수만 구의 마른 유골들이 겹겹이 쌓아 만든 탑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갔습니다. 그 흔적 위로 베트남 전쟁과 우리의 6.25 전쟁이 오버랩되어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자신이 선택한 이념에 점점 믿음을 잃어가는 지식인 파트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파괴와 살육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심지어 어린이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행하는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낀 거 같습니다. 아마도 영화는 파트의 고뇌를 통해 인간과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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